202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본문

밑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고징니 2018. 2. 4. 20:4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58쪽

 그리고 다른 뭔가가 있다: 테이블 위에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이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놓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테레사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71쪽

 <신분 상승>을 끊임없이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이 갖춰진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87쪽

 그녀는 그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오류에 근거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날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토마스를 속이기 위해 그녀가 사용했던 가짜 신분증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만들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잘못이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통해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장 중간에서 30초 가량 말을 멈추었던 두브체크 같았고, 말을 더듬고 숨을 돌리고 말을 잇지 못했던 그녀의 조국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은 약자이다.




89쪽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짓을 저지르고 싶었다. 지나간 7년의 과거를 한꺼번에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현기증이었다. 머리를 어지럽히고 극복할 수 없는 추락의 욕구.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하며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백주대로에서 쓰러지고 땅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












머리를 어지럽히고 극복할 수 없는 추락의 욕구.


'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근에 다 읽지 못한 책  (0) 2018.08.11
<종의 기원> 정유정  (0) 2018.08.09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0) 2018.01.29
<재와 빨강> 편혜영  (0) 2018.01.29
<백의 그림자> 황정은  (0) 2018.01.2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