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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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 아멜리 노통브

고징니 2018. 1. 29. 17:55






9쪽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저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13쪽


  마침내 나는 내 전체를 온전히 쥘리에트에게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으로 이사 온 후 처음 며칠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나 하얗고 조용한 나머지 자주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태도로 서로를 마주보았던, 숲으로 산책을 몇 번 나간 것 외에는.








15쪽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는 줄곧 그 집에서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마을로 갔다. 모브의 식품점은 우리를 매혹시켰다. 그 식품점에서 팔고 있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우리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빠뜨렸다.








67쪽


 피해를 입는 경우에 장점이 있을 수 있다면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적 성찰을 해 본적이 없는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치 거기서 미지의 힘을 발견하기를 기대했던 것처럼.

 그런 힘을 발견하는 대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스스로가 소심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40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면서 나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소동을 겪은 적이 없었다. 학생들은 나를 존경했다. 나는 나 자신이 선천적인 권위를 타고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강한 인간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엇다. 다만 나는 교양 있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교양 있는 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여유에 넘쳤다. 그런데 뻔뻔스러운 인간을 만나기가 무섭게 내 그런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159쪽

 어느 날 아침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결국 당신은 그자의 자살을 막았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고 있는 거잖아."
 그녀는 작지만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결코 그런 게 아냐. 그건 막았어야 했어."
 그 점에 대해 그렇게까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니 그녀는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행동이 옳았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목숨을 구한 내 행동을 후회했다. 사태를 완전히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구해 준 나를 그쪽에서 먼저 비난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병원에서 데려오던 날, 그는 드물게 설득력 있는 태도로 자신의 그런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던가.
 더 지독한 것은 이제는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자 이런 끔찍한 결론이 나왔다. 그에게는 죽고 싶은 이유가 너무나도 많다는.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지옥일 터였다. 그는 산다는 것에 대해 아무 기쁨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그것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해서 오감 불감증이 된것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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